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리고리 쿨리크 (문단 편집) === 독소전쟁 === 겨울전쟁 당시의 공훈으로 원수로 승진한 그는,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전선에 나선다. 6월 23일에 제 3 기계화군단과 제 10 군단을 이끌고 독일군을 저지하려다 오히려 포위되었고, 2주만에 [[빤쓰런|군복에 계급장, 병과장등 모든 표식을 떼고 혼자서 겨우 탈출하였다.]] 이때 NKVD는 쿨리크를 기소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제출했으나, 쿨리크는 그때까지는 스탈린의 신임을 유지하고 있었던 듯, 다른 전선으로 전보되는 것으로 끝났다. 11월 우크라이나의 케르치 반도 수비를 맡은 그는 상부의 허가 없이 부대를 철수시켰다. 이때도 전투중 만취해 있는 등의 근무태만 및 무능을 보였다. 케르치 반도를 잃고 모스크바로 돌아온 그는 [[레닌그라드 공방전]]로 전보되어 주코프와 함께 전선을 담당하지만 다시 무능을 보이고 작전상 실책을 범해 해임 당하고 모스크바로 소환되었다. 스탈린도 이런 무능한 부하를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듯, 군사재판에 넘겨버렸다. 그는 여러 패전과 명령불복종, 근무불성실 (작전중 만취) 등의 죄목으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 벌로 1942년 2월 19일에 [[소비에트 연방 영웅]], [[레닌훈장]], [[적기훈장]]등의 수훈을 취소당하고, [[원수(계급)|원수]]계급도 박탈당한다. 그나마 처형당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스탈린은 과거의 친분을 생각해 그나마 배려해준 듯 하다. 2월 24일에는 당중앙위원회 위원에서도 철직되었다. 이후 후방의 예비부대를 지휘하다가, 1943년 [[쿠르스크 전투]] 당시 다시 제4근위군에 사령관에 임명되어 기회를 얻었으나 작전 지휘에 다시 무능을 보였고 그리하여 주코프가 직접 해임하였다. 이후 일선에 나서지 못하고 국방부에서 근무하였는데, 스탈린은 옛정을 생각해서 다른 사람 같으면 처형감인 실패를 몇 번 용서해 주었지만, 쿨리크는 자신이 좌천된 것을 스탈린 탓으로 돌리는 불경한 짓거리를 했다. 여기에 공사도 불분명하지 않아서 국방부 공금을 마음대로 유용하여 자신의 별장의 집기를 사거나 병사들을 자기 별장의 미화에 동원하는 짓거리를 벌였다. 이런 행태때문에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징계를 받았고 공산당에서 추방되고, 1946년 예편 처분을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